교회에 대한 우리의 빈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회학자들의 경우 교회의 등장을 어떤 사회적인 활동의 결과물처럼 이해하려고 시도하겠지만, 우리에게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설립하셔서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형태로 존재하여 왔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새로운 형태, 더 발전된 형태의 교회가 (소위 신약의 교회라고 부르는데)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사건과 더불어 수립되었습니다.

특히 그 역사의 순간이 성경의 사도행전 2장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과연 교회를 단순한 사회적인 단체, 공동체, 친목회, 신우회와 구별시키는 독특한 성격이 무엇이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 선교, 사회 봉사, 친목, 교육 등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러한 일들은 꼭 교회라는 특수한 이름을 안 붙인 단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돌려 말하자면, 선교 단체를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회사 내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여 신우회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면 그 신우회를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거기엔 성례전 또는 권징이 시행 되지 않으니 교회라고 할 수 없다’고 답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모여 목사를 세우고 여러가지 형식을 갖추고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면 (일반 사회에서야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겠지만) 우리가 그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교회의 본질과 생명에 대해 우리의 각성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빈곤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부패가 들어오기 쉽고 또 그러다 보면 타락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빈곤

기독교의 진수는 죽어서 천당가는 데에 있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내세에 국한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성경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과연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해 보면 대답이 모호하다는 것이 우리의 빈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공동체다 등 여려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가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그 의식이 빈약하다면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빈약하다는 뜻일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란 단어가 죽어서 가는 곳이란 한정된 의미로 대개 사용 되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의 기록을 보면 (특히 누가복은 24장과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까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당신이 누구인가, 왜 부활하여야 하는가를 설명하시고,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현재 다스리고 계신다고 증거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그 나라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그 왕권을 행사하시는가? 그 나라의 법과 도리는 무엇이며, 무엇을 천명하고 또 추구하고 나가는가?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