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이 왜 믿기 어려운가 (또는 쉬운가)

때는 예수님이 공적(公的)인 생활을 시작하신지 제 3년 가을,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던 때, 성경에 의하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죽은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거나 선지자라 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이 빠트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중 중 더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막절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7:31):

“그리스도 곧 메시야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그런데도 제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예수님께 아뢰지 않은 것을 보면 거기에 큰 무게를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나오는 베드로의 대답과 군중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공리적인 메시아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지낙토를 제공할, 또는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또는 이상적인 인간 혹 선생으로서 참된 삶의 모습을 가르쳐주는 것이 그들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대표하여 말한 베드로의 고백은 다음이 달랐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생물과는 달리 생식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격으로 여긴다는 표현이며 사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민중은 예수님을 그 전에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이 대답을 예수님이 승인하시고

그 때부터 비로소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고 기록합니다.

신학자들 중엔 이러한 제자들의 기록과 증거는 신화이며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부활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이 신화라고 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할 것으로 여기는 그들의 태도를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성령큰 확신으로 된 것”

이라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

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위에 오르사 과연 이 땅 위에 그 분의 통치권을 발휘하시는 ‘실증’이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 실증이 나타나지 않을 때 누구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실증이 있는 만큼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는 신화나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실체로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과학 공부 좀 하세요

“암흑 물질” — 이것은 자연을 이루고 있는 극도로 미세한 기본 입자들의 상호작용과 광대한 우주의 팽창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물리학 지식의 경계선에 있다. 이러한 최전방에 있는 탐구 주제에 있어서 좋은 실험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동시에 정말 어려운 일로서 어쩌다 그런 실험 결과가 나오면 과학자들에게는 마치 여름에 땡볕 아래서 일하는 농부에게 전해다 주는 팥빙수 만큼 시원한 것이다. 이러한 훌륭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고국에 있다는 사실은 삼성 같은 대기업이 세계적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것 보다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은 단순히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지성의 전진에 막대한 기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중단한 최근 사례를 ExtraD 블로그에서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