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이해함

사람의 인격을 편의상 지적, 정적, 의지적 요소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성신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데, 한국인의 정서상 신앙의 정적이고 의지적 요소를 균형에 어긋날 정도로 강조하기가 쉽습니다. 반대로 지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 나머지 변론을 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에 대한 이해에서 뒤쳐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는 않으십니다.

Brothers, do not be children in your thinking. Be infants in evil, but in your thinking be mature. (1Corinthians 14:20)

그리스도의 탁월함

우리의 고백도, 회개도, 의지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이웃집 영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십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밖에 없습니다.

맥(Mac) 관련 도구 및 정보들

  • iChat이 Google Talk(구글에서 제공하는 대화 프로그램)과 호환 됩니다.
  • Quicksilver! 간단한 자판 입력으로 자주 사용하는 문서나 프로그램을 재빠르게 찾아서 열어주는 도구입니다. Quicksilver에 대한 좋은 소개 문서로 이곳을 보세요.

이 외에도 유용할 수 있는 것들:

  • Mac 과 관련된 것을 검색하는 구글 장: www.google.com/mac
  • DevonThink! 문서, 사진, 동영상, 인터넷 정보 등 수집된 정보들을 분석하여 분류하거나 검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좋은 소개 문서로 이곳을 보세요.

시드니 콜만의 양자장론 강의

시드니 콜만(Sidney Coleman)의 전설적인 양자장론 강의 동영상을 하버드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블로그계에서는 새로운 소식도 아니지요.

얼마전 작고하신 콜만 선생은 예리한 물리학적 통찰력과 장론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그러한 당신의 학문을 재치 넘치게 전달하는 강의로 물리학계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어떤 세미나에 콜만이 참석하면 세미나 시작 후 15분 뒤엔 발표 주제에 대해 연사 보다 콜만이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뒷 얘기를 들은 것이 생각납니다. 콜만 선생이 몸이 안 좋던 때 그 분의 친구들이 콜만 선생을 위해 학회를 열었는데, 그 때 그 자리에서 만나본 노벨상 수상자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하버드 홈페이지에 올려진 강의는 1975–1976년에 기록된 것인데요, 그 때 함께 기록된 강의록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비슷한 내용들로 채워진 강의록을 David Tong 교수님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양자장론을 그렇게 명쾌하게 설명하는 문서를 저는 따로 본 적이 없습니다. Ticciati의 책을 보면 콜만 선생의 강의에 기반했다고 서문에 쓰여져 있는데,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가능한한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배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책이 많이 두꺼워졌습니다. Bryan Chen이라는 학생이 콜만 선생의 강의록을 LaTeX으로 정리하다가 중단했는데요 (파인만 도표를 그리기 힘들어서 그랬다는군요…) 여력이 되는 사람들이 함께 완수한다면 후세대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정: Bryan Chen 씨가 하던 LaTeX 작업을 Ting Yuan Sen 씨가 이어나가 완수했다는 소식입니다. 파일들은 다음 주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www.physics.upenn.edu/~chb/phys253a/coleman

이와 관련하여 Bryan이 Luboš Motl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을 다음 주소에서 읽으실수 있습니다:

http://motls.blogspot.com/2011/03/sidney-colemans-qft-lectures-tex-pdf.html

주옥 같은 노트를 자원하여 디지털화한 Bryan과 Yuan Sen 씨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Benjamin Peirce

Benjamin Peirce는 수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교육 또는 수학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다음 기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In order that a man’s whole heart may be in teaching he must be thoroughly imbued with the vital importance and absolute truth of what he has to teach; while in order that he may have any measure of success in learning he must be penetrated with a sense of the unsatisfactoriness of his present condition of knowledge. The two attitudes are almost irreconcilable. But just as it is not the self-righteous man who brings multitudes to a sense of sin, but the man who is most deeply conscious that he is himself a sinner, and it is only by a sense of sin that men can escape its thraldom; so it is not the man who thinks he knows it all, that can bring other men to feel their need of learning, and it is only a deep sense that one is miserably ignorant that can spur one on in the toilsome path of learning. That is why, to my very humble apprehension, it cannot but seem that those admirable pedagogical methods for which the American teacher is distinguished are of little more consequence than the cut of his coat, that they surely are as nothing compared with that fever for learning that must consume the soul of the man who is to infect others with the same apparent malady.”

“There is proof enough furnished by every science, but by none more than geometry, that the world to which we have been allotted is peculiarly adapted to our minds, and admirably fitted to promote our intellectual progress. There can be no reasonable doubt that it was part of the Creator’s plan. How easily might the whole order have been transposed! How readily might we have been assigned to some complicated system which our feeble and finite powers could not have unravel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