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신유, 은사, 천사 등을 내세우는 거짓

그리스도 예수의 공효와 그를 향한 믿음이,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믿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장 中)

그러나 기독교 초창기에는 할례를 받았다던지 토요일을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이 그러지 않는 기독교인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침입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류 없이 높으심과 탁월함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로새서 2:16–18.)

할례, 안식일 만이 아닙니다;

금식도, 방언도, 신유도, 새벽 기도도,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위에 무엇을 덧 붙여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성도 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외에 그 무엇이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는 그 어떤 식의 생각도,

아무리 ‘기독교’라는 껍대기를 쓰고 나와도,

그것은 인간 종교요 인간의 헛된 자랑이요, 십자가를 욕보이는 것임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2:8–10)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Fide (오직 믿음)!

말씀의 기근 (예수님은 왜 믿으시나요?)

죽어서 가는 낙원에 대한 환상을 본 얘기, 천사를 만난 얘기를 적어 놓은 책이 있길래, 그 저자—Shawn Bolz (우리 말로는 ‘샨 볼츠’로 알려져 있더군요)—에 대해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Shawn Bolz의 책을 적극 비추천합니다. 요새 시간이 없어서 “안녕하세요 성령님” 독후감 처럼 자세히 적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mall.godpeople.com에서 도서 판매 순위를 보니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왜 이렇게 신유, 은사, 방언, 예언이 인기인 것인지요…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이럴 것이면 성경은 왜 들고다니는지…”

저도 의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은 왜 믿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믿었습니까, 아니면 그 분에 대한 성경의 증거와 그 분의 말씀으로 인해 믿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으로 당신을 증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17–21)

그리고 공생에 마지막에도 말씀으로 그분을 증거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4–48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신비적인 것들을 찾을까 생각을 해 보니, 당장 드는 생각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각성이 없어서 — 즉 말씀의 기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방언, 천사, 꿈 등 말초 신경을 자극하고 신기한 얘기에 자꾸 눈과 귀가 쏠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왜 성경을 읽어도 각성이 없을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자신의 욕심이 눈을 가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와 같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Sola Scriptura — `오직 성경’의 큰 도리를 환요하게 비춘 칼빈, 루터 같은 개혁자들이 이 시대를 방문한다면 얼마나 통탄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