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으로 무엇을 깨달으려 하는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린도전서 4:6)

설령 방언을 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무엇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인가는 결국 성경을 통해 분별 됩니다.

그렇다면, 방언을 하지 못해도 성신께서 성경을 통해 같은 내용을 깨닫게 하신다면 목적이 달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던 안 하던 차이는 내 감각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는 방도는 말씀을 통해서이고 방언이 성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 만 번 꿈을 꾸고 방언을 해서 무엇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위해 필요 충분한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 제시하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치 방언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주장들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방언, 꿈 등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깨닫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개인의 사생활을 맞추는 점쟁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주위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던지, 자기의 어떤 진로를 맞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점쟁이가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적은 드물 뿐 더러, 만일 점쟁이가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 했을 때는 나라가 중흥하기는 커녕 망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케내는 그런 조잡한 미신, 사술, 설령 그것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하더라도, 그런 점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하고 사라져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보는 안목, 정치적 안목, 경제적 안목 있는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식견과 안목을 갖는 것이 점치는 사술 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앞날을 내다 보고 예비한 사람들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그들이 앞날을 내다봤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통찰력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여 국가 경영의 길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 소위 신통력 있다던지 예언의 영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개인의 사생활과 욕심과 관련해서나 무슨 얘기들을 하지,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고 참으로 실력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데는 별 능력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참 된 능력은 없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