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수선한 고국을 보며—.

  • 자유/정의는 한 사람의 어깨에 지우기엔 너무도 무거운 이름이다.
  •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1–22)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일이다.

함께 슬퍼하는 많은 이들이 있음이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Physical Meaning of Vector Potential (벡터퍼텐셜의 물리적 의미)

(English translation at the end.)

벡터퍼텐셜 \vec{A}는 벡터장으로써, 회전연산자를 통해 자기장 \vec{B}를 구할 수 있습니다:

\vec{B} = \nabla\times\vec{A}.

이런 연유로 벡터퍼텐셜은 자기퍼테셜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전기적 짝꿍은 스칼라퍼텐셜 \phi로써, 기울기연산자를 통해 전기장 \vec{E}를 구할 수 있습니다: (벡터퍼텐셜이 시간에 대해 불변이라는 가정 아래)

\vec{E}=\nabla\phi.

스칼라퍼텐셜은 전기퍼텐셜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벡터퍼텐셜이 물리적 의미는 별로 없는 수학적 도구일 뿐이라는 의견을 마주칠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벡터퍼텐셜의 실체를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이 필요하다는 “미신”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이 틀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전 전기역학은 자체적으로 상대론적인 이론임을 기억해 보세요. 우리는 벡터퍼텐셜이 스칼라퍼텐셜과 더불어 4차원 벡터를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움직이는 기준틀로 옮기는 로렌츠 변환은 스칼라퍼텐셜과 벡터퍼텐셜을 섞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스칼라퍼텐셜(즉, 전기퍼텐셜)이 물리적 실체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벡터퍼텐셜 또한 물리적 실체를 지녔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예컨대 질량 m과 전하 q를 지닌 입자가, 전자기장이 있는 계 안에 있다고 해 보세요. 뿐만 아니라, 이 계에 특정 대칭성이 있어서, 예를 들자면, x-축 방향과 나란한 이동에 대한 대칭이 있다고 하지요. 이 경우, 선운동량 또는 각운동량은 일반적으로 보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x-축 방향의 바른틀 운동량 m\frac{dx}{dt}+qA_x가 보존됩니다. 이 사실은 라그랑지 역학과 뇌터의 정리를 이용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벡터퍼텐셜이 운동량을 전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막스웰은 (막스웰 방정식의 아버지) 벡터퍼텐셜에 “전기역학적 운동량”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조건하에서는) 벡터퍼텐셜이 “점전하가 받는 기전력의 시간에 대한 적분”임을 밝혔습니다. (인용은 그의 저서 “A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의 제 590 소절에서 찾았습니다.)

막스웰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이애하기 위해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실험이 파인만의 강의록 제 2권, 17-4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언급된 장치를 갖고 “전류가 급작스럽게 떨어질 경우”를 고려해 보십시오. 조금 더 간단한 실험은 (그 외에도 유익한 논고를) 다음 논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M.D. Semon and J. R. Taylor, “Thoughts on the magnetic vector potential”, Am. J. Phys. 64 (11), Nov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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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교회 (한겨례 신문 5월 16일 광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이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가르칩니다.

이를 돌이켜 볼 때, 교회가

  •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힘있게 전하지 못하고 진리를 흐릴 때,
  • 영적인 전투를 하지 못하고 사회적/정치적 이해세력이 되려고 할 때,
  • 그리스도의 지체로 존재하는 본의를 망각하고 신앙을 개인의 인격 수양으로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거룩한 교회가 아닌 타락한 교회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에 대하여 최낙재 목사님이 전한 강설이 5월 16일 한겨례 신문에 전면 광고로 실린다고 합니다. 전문은 성약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방언에 대한 개혁신앙적 입장

그런가하면 성경 시대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였지만 오늘날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 날에도 방언 현상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둘째 입장을 가지게 되면 성경에 나타난 방언과 오늘날 있는 방언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을 취할 때, 오늘날의 방언 현상과 성경적 방언을 같은 것으로 보고 하는 논의를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 “방언 문제에 대한 성경적 개혁 신학적 논의를 감사드리면서” 이승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