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살아가는 사람

Aside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 때문이다. 감히 어떤 것은 내가 누려 마땅하다는 듯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해 불만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 무엇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불평할 자격이 없으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주님의 거룩한 나라에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주께서 권고하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내 무한한 형벌을 대신 받길 원하실 정도로 사랑하셨다. 그런 주님 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내 분수를 넘어서는 말이다; 그저 감사하며 늘 우러러 보며 좇아가야할 것이다. 어린 아기가 부모가 없어지면 죽는 줄 알고 그 품에 안기는 것 처럼, 그리스도 만을 전부로 의지하고 기뻐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내게 가장 어울린다.

개신교회는 개혁된 위치에 있는가

미국 개신교는 유럽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지 자기네 땅에서 어떤 개혁을 통해 수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가 상기시켰다 [1]. 그 미국의 개신교를 전수 받은 것이 한국의 개신교이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된 한 요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교회는 계속 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된 상태에 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개혁된 교회의 상태에서 떨어져 있다면, 개혁된 위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실상 한국의 개신교회는 그 초기부터 개혁된 교회의 각성 내용이 희미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종교개혁의 본질, 쟁점, 혹은 정수라고 할 내용이 처음부터 뚜렷하지 못했고 지금도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예컨대 개혁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로 칼빈은 예배와 복음의 왜곡을 꼽았다예배에 대하여서는 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예배 방식이 아닌 인간이 고안해낸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수이 여기는 큰 죄라는 각성이 있었다. 구원에 대하여서는 우리의 믿음이라던지, 행위라던지, 선택이라던지,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 인정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비참한 상태이지만, 은혜로운신 하나님께서 하나도 건질 것이 없는 우리의 것들을 간과하시는 대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보시고 (‘오직 그리스도’) 구원하시되 처음 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신다는 (‘오직 은혜’) 복음의 사실을 개혁자들은 분명히 간취하였다.

개혁자들의 그러한 자세에 비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관념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조심히 비춰보는 태도를 갖고 있는가? 설교, 기도, 찬송, 헌상에 담긴 내용은 천지의 대주재에게 ‘예를 갖추어 절한다’는 예배의 주된 목적과 어울리는가? 혹 예배를 기도, 찬송, 말씀으로 구성된 종교예식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복음과 구원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은 어떤가? ‘오직 그리스도’의 사실에 대한 각성이 명확하지 못하면 ‘나는 xxx니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하나님과 더 가깝다’는 식의 자기 시인이 자리 잡게 된다. (‘xxx니’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으니’, ‘새벽기도를 하니’, ‘신앙생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니’, ‘개혁교회 회원이니’, ‘사기를 치지는 않으니’, 등등.) 반대로 지금보다 더 큰 종교적 열정을 가져야 하나님 앞에 혹은 교인들 앞에 좀 더 위신이 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런 종교적 욕구를 이용해 종교 활동에 열심을 내도록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비류 없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공로에 우리의 그 무엇을 덧붙이려는 행사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로채는 우람된 짓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완전하다는 복음의 사실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꽤 있다. 그럴 때 개혁의 방법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두어야 할텐데, 허다히 많은 경우 인간의 방식,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사회 단체를 개혁한다고 할 때 들고 나오는 것들을 그냥 쥐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참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사용하시는 성신의 능력 만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그것을 증언한다.


각주
[1] 미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 되는 ‘신’, ‘하나님’, ‘하느님’ 등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잘 설명한 글의 서두에서 읽었다. 그 글의 내용은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생각 곧, 미국이 이신론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것과 잘 들어 맞는다.

파키스탄의 압두스 살람 수리과학원

이번 달 AMS Notices에 파키스탄에 있는 압두스 살람 수리과학원 (Abdus Salam School of Mathematical Sciences) 방문기가 실렸다. 저자는 졸인의 석사학위 지도교수님이셨던 Tufts 대학 수학과의 Loring Tu 교수님이다.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인데, 이번에도 파키스탄의 문화와 근황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좋은 글을 쓰셨다.

노르웨이 테러범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테러를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만행으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테러범이 남긴 글에 의하면, 종교적으로 그는 자신을 개신교인으로 소개하며, 개신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대 교회는 사멸할 것으로 보며, 청바지를 입고 팔레스타인을 위해 시위하는 사제들을 싫어한다. 또 Knights Templar 회원이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일반적 정의 어디에도 해당 되지 않는다. 기독교와 서구 역사에 조금이라도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로마 가톨릭, 개신교, 프리메이슨’을 모아 놓은 것보다 더 터무니 없는 조합이 없을 것이다. 좋게 말해 극우주의의 만행이지, 한 마디로 말해 이성이 꼬여버린 사람의 광기라고 밖에 지금으로서는 볼 수 없다.

via GetReli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