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AMS Notices에 파키스탄에 있는 압두스 살람 수리과학원 (Abdus Salam School of Mathematical Sciences) 방문기가 실렸다. 저자는 졸인의 석사학위 지도교수님이셨던 Tufts 대학 수학과의 Loring Tu 교수님이다.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인데, 이번에도 파키스탄의 문화와 근황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좋은 글을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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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테러범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테러를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만행으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테러범이 남긴 글에 의하면, 종교적으로 그는 자신을 개신교인으로 소개하며, 개신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대 교회는 사멸할 것으로 보며, 청바지를 입고 팔레스타인을 위해 시위하는 사제들을 싫어한다. 또 Knights Templar 회원이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일반적 정의 어디에도 해당 되지 않는다. 기독교와 서구 역사에 조금이라도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로마 가톨릭, 개신교, 프리메이슨’을 모아 놓은 것보다 더 터무니 없는 조합이 없을 것이다. 좋게 말해 극우주의의 만행이지, 한 마디로 말해 이성이 꼬여버린 사람의 광기라고 밖에 지금으로서는 볼 수 없다.
via GetReligion
한글 여백 성경
개인적으로 ESV 번역을 좋아하기에 ESV Journaling Bible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혹 한글 성경 중에도 기록을 위한 여백이 있는 성경이 있는가 알아 보았다.
- 대한성서공회에서 출판한 관주 여백 성경. 한 단 인쇄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백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 아가페에서 출판한 열린 노트 성경. 역시 한 단 인쇄라는 점이 좋다. 그러나 역시 여백이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불필요한 장별 요약이 제본이 된 가운데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성경 본문 만 있는 것이 가장 좋다.
- 오래된 관주 여백 성경 전서. 구할 수 만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여백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서체와 조판 형식이 오래된 것이 유일한 흠이다. 하지만 여백 만큼은 옆과 위, 아래까지 충분하다.
ESV Journaling Bible (여백 성경)
성경에 공부한 내용을 적을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보통 출판사에서 마련한 주석이나 기타 여러가지 내용들이 성경 본문과 함께 지면에 있는데, 그런 부가적인 것들을 빼내고 차라리 여백을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ESV 번역을 갖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몇몇 제품들이 시중에 나와 있었다. 그 중 두 가지 제품이 마음에 들었다. (한글 여백 성경에 대한 것은 따로 적었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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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way) |
ESV Wide Margin Reference E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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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드는 점 | • 고무줄이 달린 양장본이 있다 • 서체가 미려하다 |
• 제본이 된 가운데에도 여백이 있다 • 위, 아래 여백 또한 넓다 |
| 마음에 안 드는 점 | • 여백에 줄이 그어져 있다 • 두 단 인쇄지만 가운데 여백이 없다 |
• 서체가 그다지 미려하지 않다 |
여백만 고려한다면 Cambridge에서 출판한 것이 낫다. 하지만 나는 튼튼한 성경을 또한 원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고무줄로 양장표지를 닫아놓을 수 있는 ESV Journaling Bible이 더 끌렸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구매한 것이 오늘 도착해 아래 사진 몇 장을 첨부한다. Cambridge에서 출판한 것은 J. Mark Bertrand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잘 소개했다. (ESV Journaling Bible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자신의 방식으로 따로 제본을 하는 것에 대한 많은 글들 또한 주목이 간다.)

ESV Journaling Bible, 두 단 인쇄를 하였다. 기록할 수 있는 여백은 옆에만 있다. 지면이 제본된 가운데 영역에 여백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여백에 줄 또한 없었으면 하지만, 옅은 점선으로 되어 있어 그리 거슬리지는 않는다.
아래는 불필요한 사양들:
박아교육(博雅敎育, liberal arts)의 필요성
미국에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라는 대학이 있다. 소위 박아교육대학(liberal arts college) 중 하나이다 — 즉 특정 전공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문학과 과학의 기본적인 소양을 두루 갖추는데 집중하는 학교이다. 1696 년에 설립 된, 역사가 오랜 학교이다. 1936 년, 당시 미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이 학교가 재정 파탄에 이르렀다. 학교를 살리기 위하여 새 학장과 총장으로 스트링펠로 바아(Stringfellow Barr)와 스캇 뷰캐넌(Scott Buchanan)을 영입하면서 교육과정을 전면 재구성하였다. 그 때 이 사람들이 구성하여 지금까지 시행 되는 것이 ‘위대한 고전들’(Great Books) 과정이다.
‘위대한 고전’ 과정은 그 당시 급변하던 대학 교육 과정의 풍조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서, 철학, 신학, 수학, 과학, 음악, 문학 등의 영역에 기여한 서구 문명의 중요한 고전들을 읽고 토의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험과 학점 보다는 배움에 중점을 둔는 학풍이 그 가운데 있다.
이처럼 특정 세부 전공의 습득에 앞서 인문 과학 전반에 걸쳐 깊이 있는 사상가들을 (책을 통해) 만나고 교양과 식견을 쌓는 것의 중요성은,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옛것을 버리는 데 빠른 현대인들에게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작고하신 김영무 교수님께서 ‘우물을 깊게 파려면 처음에는 넓게 파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을 아니 들어본 사람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CLA (College Learning Assessment) 점수를 분석한 결과 인문학 또는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공대 학생들 보다 비판적 사고 및 분석력에서 평균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1]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애플의 뼈속에 각인 되어 있습니다. 학예와 융합된, 인문학과 융합된 기술이야말로 흥이 절로 나오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애플의 철학에 대해 힘있게 강조한 부분이다.
대학 교육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였지만, 이것은 결코 대학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막론하여 교육이라는, 배움이라는 것 전체를 접근할 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조국 사회의 교육 풍토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교육열이 강하다고 하나 차라리 교육결과열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니 ‘정답이 무엇이냐’, ‘남들보다 좋은 결과 얻자’는 식의 노력이 주를 이룬다.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박아교육이 강조 되어야 한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하나, 학교 또는 가정에서 박아교육을 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박아교육에 중점을 두는 사교육을 찾아 나서는 것에 전혀 반대할 의사가 없다. (그런 사교육을 찾을 수나 있다면 행운일테다.) 하지만 학예교육은 가정에 자리 잡았을 때 가장 큰 효과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음을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런 저런 학원 또는 시설에 보내느라 돈을 쓰고, 또 그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다니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고전을 읽고 토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유익하리라.
바라기는 한국에서도 세인트 존스 칼리지 같은 교육 과정을 갖춘 학교들이 나오고, 또 그런 교육이 강조 되는 풍토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개혁주의적 학교들이 설립되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특히 개혁주의적 교육자들이 박아교육의 중요성을 마음에 두고 학교 설립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참으로 신학과 철학, 수학, 과학, 문학, 음악, 미술 등에 두루 교양과 식견을 갖추어 궁극적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영광을 더욱 섬세하고 깊고 호방하게 맛보고 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석
[1] R. Arum, J. Roksa, Academically Adrif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