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메밀꽃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둣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고백

고 백

— 김남조

열. 셀때까지 고백하라고

아홉. 나 한번도 고백해 본적 없어

여덟. 왜 이렇게 빨리세?

일곱. …..

여섯. 왜때려?

다섯. 알았어. 있잖아

넷. 네가 먼저 해봐

셋. 넌 고백 많이 해봤잖아

둘. 알았어

하나반. 화내지마 ..있잖아

하나. 사랑해

사랑한 이야기

사랑한 이야기

김남조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해 저문 들녘에서 겨웁도록 마음 바친

소녀의 원이라고

 

구김없는 물 위에

차갑도록 희 이맛전 먼저 살며시 떠오르는

무구한 소녀라

무슨 원이 행여 죄되리까만

 

사랑한 이야기야

허구헌날 사무쳐도 못내 말하고

사랑한 이야기야

글썽이며 목이 메도 못내 말하고

죽을 때나 가만가만 뇌어볼 이름임을

 

소녀는 아직 어려 세상도 몰라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꽃이 지는 봄밤에랴

희어서 설은 꽃잎 잎새마다 보챈다고

 

가이없는 누벌에

한 송이 핏빛 동백 불본 모양 몸이 덥듯

귀여운 소녀라

무슨 원이 굳이 여껴우리만

 

사랑한 이야기야

내 마음 저며낼까 못내 말하고

사랑한 이야기야

내 영혼 피 흐를까 못내 말하고

죽을 때나 눈매 곱게

그려 볼 모습임을

 

소녀는 아직 어려 세상도 몰라

기막힌 이 이야기를 하랍니다

사랑한 이야기를 하랍니다

 

참새

참새

– 윤동주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

짹 자 한 자밖에는 더 못 쓰는걸.

 

(윤동주, 193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