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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Reformed
기독교강요 1.6절
(1년 완독 계획표가 여기 있습니다.)
1.5 절에서 내린 결론에 의거하여 1.6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필수적임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구전 되었다가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성경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방식의 종교를 고안하는 유혹에 빠지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의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9:7--8]
하나님께서 초기에는 유대인들에게 그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자와 그에 대한 증거가 유대인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됨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한복음 4:22)
기독교강요 1.5.10–12
본 소절들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 없이 인간이 스스로 궁구하여 신을 탐구할 경우 여지 없이 거짓과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1년 읽기
올 해는 칼빈 선생이 태어난지 500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신학자 가운데 들어가는 그가 교회에 끼친 유익은 쉽게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저술한 기독교강요(The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는 교회가 개혁되고 흑암의 중세를 접고 근대사회로 넘어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런 칼빈을 시기하여 그와 관련된 헛소문과 그의 신학을 곡해하는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이럴 때 칼빈의 역작인 기독교강요를 직접 읽어 보는 것이 그의 신학과 신앙을 이해하고, 주께서 그 백성들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사이트에서 기독교강요를 (영어판) 1 년에 걸쳐 완독할 수 있도록 조금씩 등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인격적 관계”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핵심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인격신(人格神)이심을 알고 그 분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인격신으로 알고 두려워 앞에서 떤 다는 점에서 마귀도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19; 욥기 1장; 마가복음 5:6,7)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기독교 계에서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언약의 관계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는 당연히 인격적 관계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 관계’라는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거기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언약 파괴자인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그 은혜의 언약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인격적 관계’라는 말과 관련하여 다음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함을 받아 성신을 의지하여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려면 첫째 하나님과 인생으로서 정당한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일이고, 또 그런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지금 이 세대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곧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거기에 발맞추어 뜻을 같이 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경 묵상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경건의 생활을 힘써서 도덕적 완성을 힘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정당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서 세우신 제도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 정병길, “가정에 대하여”
마지막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위의 정병길 목사님 글은 혼인과 가정에 대한 것인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