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가정 예배 — 김헌수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사회가 가정인데, 죄가 들어와서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 김헌수, “두 가지 가정 예배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사회가 안정된 가정에 터를 두기 보다는 직장과 돈(맘몬)에 터를 잡고 일어서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아이는 사회가 맡아서 길러줄테니 어찌해서든 부모를 일터로 불러내려고 한다. 실상 가정에서 바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 보다는 자기가 찾은, 자기가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우선을 두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그런다고 해서 언약의 백성들 조차 거기에 휩쓸려 가서는 안 된다.

남녀평등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

누가복음 8장 1–3절에는 예수님께 공궤를 하며 사역을 돕던 여인들이 기록되어있다. 그 기록을 보면 그들의 남편이 (혹 있다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느냐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다. 이 여인들은 남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는 이 여인들이 그 분의 사역을 직접적으로 돕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직분에 남녀의 구분이 없다고, 예를 들어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 구분이 없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고 유업으로 받는 일에 있어서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접근은 뭐든지 피상적으로 제도를 통해 고치려는 현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접근법이자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개미에게 가서 지혜를 얻으라?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개미가 사람에게 와서 “아… 일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하고 배웠을텐데, 이제는 사람이 개미한테 가서 지혜를 얻어야 할 만큼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타락시켰다. (잠언 6장 강설 중 기억나는 한 대목.)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속한 자들을 새롭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영광과 지혜와 권세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린도전서 6:2--3]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고 (고린도전서 2:9) 하였다. 우리를 어떠한 영광스런 위치에 옮겨 놓으셨는지에 대한 생각과 믿음이 희미해질 때, 우리는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처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반복하기 쉽다.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히브리서 12:18–29)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천당과 지옥이라는 상벌을 놓고 종교행위를 강요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하나님의 택하심을 ‘이미 받은 자’라고 가르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믿기만 하면 앞으로 뭔짓을 해도 천당간다 가르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삶을 위한 가장 큰 동기가 됨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중 하나이다. 히브리서 12장 18–29절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모세의 말을 민족해방, 노동해방으로 착각한 파라오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와 파라오에게 히브리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려 하니 보내주라고 말하자 처음에는 파라오가 완강히 거절하였다. ‘너희가 게으르니 종교 핑계를 댄다’며 오히려 고역을 더하였다. 그 후 어려움이 더하자 파라오는 ‘멀리갈 이유 있냐, 여기서 종교 행사 해라’ 하였지만 모세는 그럴 수 없다 하였다. 그래서 파라오는 ‘그러면 장정들만 가라, 다 갈 필요 있냐’고 말하였다. 그것 역시 안 된다고 모세가 말하자 파라오는 다시 한 번 양보하여 ‘좋다, 남녀노소 다 가거라, 하지만 가축은 두고 가라’고 말했다. 파라오는 철저하게 이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파라오가 이렇게까지 협상과 양보를 하려는데도 모세가 일절 합의 하지 않자 파라오는 격분하게 된다. 그러나 모세는 이 문제를 민족해방, 노동해방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파라오에게 일침을 가한다: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다시 말 해 ‘왕은 우리가 우리의 양을 가지고 가는 것을 놓고 경제적인 이해를 따지고 있는데, 이 문제는 천하만물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로서, 우리 뿐 만 아니라 당신도 우리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러 가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싫다면 당신의 양이라도 우리한테 주어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해도 부족할 판이요.’라고 모세는 말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파라오는 격분할 수 밖에 없었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죽으리라’ 말하자 모세는 도리어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며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이토록 모세가 당대 최고 권력 앞에서 대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말씀을 맡기신 분이 누구시며, 이 문제의 사안이 어떤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도 처음에는 이스라엘 해방을 민족의 해방과 투쟁의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겨 미디안 광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오랜 시간 조상들이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태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며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은혜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행보임을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그 언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천하 만민으로 알게 하신 것이다. 아직 하나님 나라의 행보는 종착지에 이르지 않았지만,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그 나라의 성격을 잘 배워, 파라오 처럼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