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실체

하나님 나라의 도리들이 그저 입으로 전해졌을 때는 그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죄 사함이라든지 구원,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라고 하는 것 등의 내용이 다 그렇다.

그런데 그런 추상적인 것들을 실체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여주신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시고 또 그로 인해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의 은혜이리라. (사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진리’란 반드시 실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보이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증케 하심을 본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떤 잘못을 범해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래서 되겠나” 또는 “이렇게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와 일부에게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차원에서의 책망이 있다. 보이는 교회는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죽고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일부로 산다는 진리를 실증하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어린 아이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낀다. 아직도 한 없이 부족한 위치에 있다.

Communio Sanctorum

오늘 예배 시간에 우리 부부와 David라는 형제를 교회의 회원으로 받는 간단한 순서가 있었다. 우리는 앞에 나가 목사님이 질문하는 것에 대답을 하였고, 대담을 마친 후 교회의 회원들이 일어나 우리를 교회 회원으로 받아 서로 권면하며 사랑 가운데 교통할 것을 서약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의지하여 목사님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 나갈 때, 마치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나라로 옮기심을 받았고 그분의 교회로 서 있다. 다만 오늘 교회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해 나갈 때 마치 우리의 모든 것을 직고하는 백보좌 심판의 그 날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 교회가 우리를 형제로 받아 주었을 때 저 훗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때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감격이 있었다.

특별히 우리에게 함께 찬송하기 원하는 시편이 있냐고 물으셨고 우리는 131편을 미리 말씀드렸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부로 삼으셨다는 것이 복음의 깊은 내용이 아닌가. 역시 그것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임을 오늘 참으로 깊게 느낀다. 아버지와 아드님, 그리고 성령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 아래 교회의 거룩한 교통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본다.

교회 회원이 됨

오늘 교회 장로님들과 만나 신앙 고백을 한 뒤 교회 회원이 되었다. 장로님들이 구체적으로 질문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1. Do you believe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o be the Word of God, the only infallible rule for faith and life?

2. Do you believe in the one living and true God — Father, Son, and Holy Spirit, as revealed in the Scriptures?

3. Do you repent of your sin; confess your guilt and helplessness as a sinner against God; profess Jesus Christ, Son of God, as your Saviour and Lord; and dedicate yourself to His service: Do you promise that you will endeavor to forsake all sin, and to conform your life to His teaching and example?

4. Do you promise to submit in the Lord to the teaching and government of this church as being based upon the Scriptures and described in substance in the Constitution of th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Do you recognize your responsibility to work with others in the church and do you promise to support and encourage them in their service to the Lord? In case you should need correction in doctrine or life, do you promise to respect the authority and discipline of the church?

5. To the end that you may grow in the Christian life, do you promise that you will diligently read the Bible, engage in private prayer, keep the Lord’s Day, regularly attend the worship services, observe the appointed sacraments, and give to the Lord’s work as He shall prosper you?

6. Do you purpose to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in all the relationships of life, faithfully to perform your whole duty as a true servant of Jesus Christ, and seek to win others to Him?

7. Do you make this profession of faith and purpose in the presence of God, in humble reliance upon His grace, as you desire to give your account with joy at the Last Great Day?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다. 그 거룩함을 알지 못하고 교회를 함부로, 때론 나의 저급한 종교관으로 대하던 암매를 뉘우친다. 교회의 회원이 되기 앞서 장로님들과 함께 공부하던 지난 몇 주간, 하나님의 경영의 가장 중심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 얼마나 숭고한 실체로 이 땅에 서 있는지 조금이나마 깨우치는 시간이 되었다. 나 개인 보다 그리스도가 중요한 만큼 나 개인 보다 교회가 중요하다. 오늘 장로님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 마치 주님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 아니, 분명 나는 주님 앞에 있었다.

배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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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 교단 광고 중 하나>

 

이 광고엔 몇 가지 교묘한 속임들이 있다 —

 

▶ 하나님은 무엇을 해도 다 용납하신다는 거짓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납하지 아니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것을 덮어 놓고 주님은 뭐든지 용납하신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른 그리스도” 또는 “거짓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영화 Passion of the Christ가 나왔을 때 신학자들이 TV에 나와 “예수님에게서 배울 중요한 메세지는 죄의 문제가 아니라 관용이다”는 거짓을 주장하던 것이 생각난다.

 

▶ 두 번째  속임은 동성애의 문제를 사람 차별의 문제로 포장하고 있다. 이것은 문제의 왜곡이다. 교회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죄인 영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인데,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이 동성애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용납하시느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수 많은 남자들이 소위 “섹시한” 여인을 보면 음욕이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셨다. 동성애가 그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죄악을 본성으로 갖고 태어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고, 죄에서 자유케 하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믿노라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믿음을 실증해야 한다. 왜냐면 믿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죄인의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환영하나, 죄를 버리지 않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결코 말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위의 광고를 보고 정말 두려웠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을 전하는 회가 평화의 사도 처럼 행사하고 있다. 아래는 UCC 교단의 표식이다. “That they may all be one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그들이 실제로 주장하는 것은 ”That they may all have their own belief (각 사람의 믿음을 존중하도록)”이다. 이러한 배도의 교회를 더 이상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는 형제라 부를 수 있을까 (마 18:17, 고전 5:9-11). 그것은 이들을 배척한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다시 전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할 사랑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고전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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