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인격적 관계”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핵심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인격신(人格神)이심을 알고 그 분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인격신으로 알고 두려워 앞에서 떤 다는 점에서 마귀도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19; 욥기 1장; 마가복음 5:6,7)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기독교 계에서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언약의 관계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는 당연히 인격적 관계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 관계’라는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거기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언약 파괴자인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그 은혜의 언약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인격적 관계’라는 말과 관련하여 다음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함을 받아 성신을 의지하여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려면 첫째 하나님과 인생으로서 정당한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일이고, 또 그런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지금 이 세대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곧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거기에 발맞추어 뜻을 같이 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경 묵상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경건의 생활을 힘써서 도덕적 완성을 힘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정당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서 세우신 제도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  정병길, “가정에 대하여” 

마지막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위의 정병길 목사님 글은 혼인과 가정에 대한 것인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Lessons from the Grain Offering

(Thoughts after reading Chapter 8 of “On Offering”, Vol 1, by H. C. Kim)

In my child days, I remember seeing people bringing rice to church for offering. This is not so common where I am now; probably the most common material we see brought for offering would be money.

Money is closely linked to our daily life; it represents potential for various things. In that sense the nature of the monetary form, which is common for offering in our day and age, is closest to the Grain Offering (Leviticus 2). Grains are used daily and it produces energy for our life, so it represents potential for various works. Another thing to notice in this regard is that, unlike the Burnt Offering, there is no laying of hand for the Grain Offering. Laying of hand represents the imputation of our sin to Christ. So we see that the focus of Grain Offering is comparatively more on our daily life.

We know that any offering bears the confession that everything that is given to us—our life, our existence, anything—ought to be offered to God for His service. The Grain Offering represents, in particular, that we offer our daily life, our breath, energy, all the resources and every potential that is given to us, for God’s service. This should indeed be our confession as we bring anything to God.

Now we notice that God commanded to pour oil, put frankincense on the Grain Offering and burn it with the salt of covenant.

Oil

There is no doubt that the oil represents the Holy Spirit (Luke 4:18). This is consistent with the New Testament teaching that nothing can be accepted to God unless it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Galatians 5:16,17; 1 Corinthians 15:50). In particular, a proper offering should be the representative of our entire existence and bear the confession that we offer ourselves in Christ, and such proper confession can only be made as we rely wholly on the Holy Spirit (Galatians 5:17).

Incense

The incense represents our prayer (Psalm 141:2; Revelation 5:8). Psalm 50:14 urges us to “offer to God a sacrifice of thanksgiving, and perform your vows to the Most High.” Indeed, as we offer ourselves to God we give thanks that God accepts us in Christ, and we vow our eternal service to Him.

Salt

God said the salt represents the eternal covenant between Him and us. Just like the salt brings flavor to food, the covenant of our God is what makes everything meaningful. This covenant—that the Lord will be our God and we will be His people forever—was established, sealed and secured by our Lord Jesus Christ. Our offering is way below the standards of the Kingdom of God and is unacceptable to Him; but in Jesus, covered by His work, God accepts us and our offering. If not in the name of Christ, no offering will be accepted by God. As people who offered themselves to God in Christ, our daily life should represent Christ and His Kingship.

기적이 믿음을 주지 못함

기적으로 사람을 믿게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지상에서 활동하셨을 때 이스라엘 민중은 다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증거한다 해도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가]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16장 29-31절)

물론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라 함은 “토라와 느비임” 곧 성경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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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죄를 계속 지어도 구원 받았나요?

회개를 주제로 하여 개혁주의의 핵심—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30여 분 짜리 녹음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루는 내용 중 몇 가지만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회개와 성화는 다른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회개는 “change of mind”이고, 성화는 “change of life”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죄의 심히 죄된 것을 아는 것이고 슬퍼하는 것이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 회개와 성화가 비슷한 부분도 있다; 둘 다 믿음의 열매이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둘 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참된 회개와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발생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방언으로 무엇을 깨달으려 하는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린도전서 4:6)

설령 방언을 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무엇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인가는 결국 성경을 통해 분별 됩니다.

그렇다면, 방언을 하지 못해도 성신께서 성경을 통해 같은 내용을 깨닫게 하신다면 목적이 달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던 안 하던 차이는 내 감각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는 방도는 말씀을 통해서이고 방언이 성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 만 번 꿈을 꾸고 방언을 해서 무엇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위해 필요 충분한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 제시하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치 방언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주장들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방언, 꿈 등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깨닫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