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해서 병 낫기 vs. 약 먹고 병 낫기

기도해서 병 낫는 것과 약 먹고 병 낫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신(神)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약 먹고 병 낫는 것은 자연의 이치 때문에 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신 개념은 이신론(理神論, deism)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친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신론은 쉽게 말하자면, 조물주가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 자연의 법칙도 창조했고, 지금은 모든 것이 그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친 바 유대-기독교의 신관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그 분의 법에 따라 지금 운행하고 계시며, 그 분께서 손을 놓으시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8)

그러므로,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약을 먹을 때에도 그 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약을 내신 하나님께서 그 약을 효과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리며 먹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약을 먹고 낫던 먹지 않고 낫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입니다.

아니, 오히려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자연을 운행하시는 법칙이 어떤 것일까 열심히 궁구합니다. 그리고 그 법칙을 무시하려고 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과학 문명이 기독교가 흥왕했던 서구 문명에서 발전하고, 또 노벨상을 많은 유태인들이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자연을 운행하시는 법을 알려고 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고, 그런 것은 몰라도 좋으니 그저 내 당장의 고통을 덜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의 대종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체에 가시를 주신 크신 뜻을 알고 감사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

종교다원주의

“정상에 진리가 있다는 … 두 산은 같은 산일까”를 읽고 예전에 쓴 글이 생각나 여기 다시 올립니다:

 

결국 종교다원주의의 큰 줄기를 간추리자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지만 도달 지점은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왜 기독교는 여기에 동조할 수 없는가? 그 이유를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순서로 얘기하자면,

 

▶ 첫째, 성경은 인간이 산에 오를 능력을 상실했다고 가르친다. 왜 능력을 상실했냐면, 다리를 잃은 것도 아니고 병이 생겨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인간은 ‘죽었기 때문에’ 산에 오를 수 없다. 병든 사람에게는 “산 꼭대기에 너를 낫게 할 산삼이 있다”는 말이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3)

▶ 둘째, 기독교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러가지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없다. 인간이 산에 오르려고 개척한 모든 길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선과 악과 미와 추가 범벅이 된 결과를 낳고 만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6)

▶ 셋째, 하나님의 요구는 산에 오르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오르라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도덕과 선행의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 있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왠만한 기독교인은 바닥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낮은 골짜기도, 높은 산봉우리도, 저 하늘 높이 있는 달나라에 비하면 오십 보 백 보다. 이러한 사실은 수도를 한 사람일 수록 더욱 잘 안다. 그러므로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름이라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기독교는 그것을 ‘다시 태어남’ 곧 ‘중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개과천선’의 개념이 아니고 사람이 어찌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3)

인간에겐 창조의 능력이 없다. 아기가 스스로 날 수 없는 것 처럼 중생 역시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새로이 창조된 새 사람을 통해 성령님께서 역사해 나가실 때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자태가 그 사람에게서 조금씩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12:13,14)

왜 (어떤) 개혁주의 신자들은 아집 센 사람 같은가

(이 글은 제 옛날 블로그 자료를 옮겨오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Why Are (Some) Reformed People Such Jerks“를 읽고 얻은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 신자들 중엔 고집이 세고 드세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그런 꼴통 중 괴물이 바로 이 글을 쓰는 나다.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아는 분들 중 내가 그렇게 무례함을 범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용서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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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개혁 신앙을 이야기 하는 이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은 후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과 내가 신비롭게 연합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나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는 나 뿐만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연합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31-32)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온 성도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하기도 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일부분으로서 우리 시대의 교회이다.

이렇게 교회가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는 나타나는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시대를 넘어 공유하는 신앙 고백이 있다는 것이리라. 예컨대 신구약을 넘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동질의 신앙 고백이 있는 것이다. 물론 구약의 교회는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였고 신약의 교회는 오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것은 신앙 고백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더욱 풍성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그 신앙 고백의 연속성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를 이룬 참 교회는 ‘어제의 신앙 고백, 오늘의 신앙 고백’이라는 불연속이란 없는 것이다. 어제의 교회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 위에 오늘의 교회가 인도를 받고, 그것을 내일의 교회에 또 전수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신앙 고백이 더욱 더욱 풍성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참 교회의 신앙을 역사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목자 되신 그리스도께서 전체의 양 무리를 역사의 가도 속에서 인도하시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사실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개개의 양도 자신이 거룩한 양 무리 가운데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역사 속에서 주류로 내려온 역사적인 신앙 고백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 보다 앞선 신앙의 선배들의 주옥 같은 가르침을 귀새겨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이 항상 기준이다. 문제는 성경을 읽고도 해석하는 것이 제각기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럴 때, 참 교회가 역사속에서 늘 면밀히 받아온 신앙 고백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칼빈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많은 사람들이, 나 역시 예전에 그랬는데, 칼빈주의는 칼빈(John Calvin)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정론은 Calvin 이 처음 주창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정론은 칼빈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칼빈과 연관되어 언급되는 이유는, 그가 그의 유명한 저서 <기독교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예정론에 대해 잘 정리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정론이 <기독교강요>에서 차지하는 것은 일부분이다. 게다가 초판에는 아예 예정론에 관한 장이 없었다. 나중에 추가가 되었다. 왜? 인간에 의해 발휘되는 믿음을 강조하던 종교개혁 당시의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바 참 믿음은 오직 성령님에 의해 사람에게 단번에 주어진다는 (유다서 1:3) 진리를 천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정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는 것이 과연 칼빈이 그것을 주창했기 때문인가? 칼빈이 그런 이론을 가르쳤다고 교회에서 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다가 그러한 내용의 말씀을 읽기 때문인가? 대개가 후자일 것이다.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정론을 깊게 생각하게 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한복음 15:16)

 

지금 나는 예정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정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기회가 되면 이 블로그에 조금 적고 싶다.) 다만 우리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역사적인,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보이고자 함이다. 특히 그것을 칼빈이 전하여 준 것을 통해 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잠시 예정론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예정론이 칼빈에 의해 정립된 이론이라고 널리 퍼진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

 

지금 앞서 얘기 했듯이 예정론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나오는 것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그렇기 때문에 루터(Martin Luther)도 예정론을 주장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의 유명한 글 제목이 <De Servo Arbitrio>, 영어로 ‘On the Bondage of the Will’이다. 에라스무스와 나눈 편지 형식의 글인데, 사람의 구원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예정론은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거스틴 선생이 또한 가르치던 바이다. 그리고 더 올라가면 바울 선생까지 가는 것이다. 더 올라가면 다윗 까지도 가는 것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지금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이 역사의 중반 속에서 갑자기 어떤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바 ‘공회’(Catholic Church)를 믿는가? Catholic Church란 오늘날의 천주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창조 이래로 지구 위에 엄연히 있어온 성도들의 거룩한 모임, 곧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성도들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가르치는 말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universal church라고도 한다. 우리말로는 ‘보편의 교회’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편의 교회를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고백 역시 시대를 거슬러 성도들과 하나의 신앙고백을 나누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초월한 신앙고백에는 익숙하다. 지금 동시대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도 나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그 신앙고백을 시간을 초월해서도 나누고 있다는 그 사실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우리의 신앙고백이 옛 성도의 그것과 모든 범위에서 똑같을 수는 없다. 예컨대 구약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온전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신앙고백의 범위일 뿐, 그들과 함께 공유하는 부분에 있어서 서로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 즉,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더욱 드러나는데, 우리가 오늘 알고 있는 것은 앞 세대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그 신앙고백 위에 더하여지는 것이다. “앞 세대의 기록은 신화다, 그래서 그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방향을 전환한 것이 결국에는 자유주의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고 성경은 가르치는 것이다.

 

칼빈이 가르친 것은 칼빈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루터와 공유했던 것이고 (물론 다른 세부적인 신학 문제에서 똑같은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거스틴 선생의 가르침 위에서 칼빈의 가르침이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 사도에게 까지 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고백은 역사성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역사적 신앙’(historic faith)이라고 한다. 특히 바울, 어거스틴, 칼빈으로 이어지는 바 교회의 가장 큰 줄기로 면밀히 전해져 내려온 그 신앙고백을 역사적 개혁신앙이라고 한다. 신학용어는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칼빈주의’다 또는 ‘개혁주의’다는 말을 붙였지만, 칼빈주의의 가르침은 칼빈이 시작한 것이 아니요, 개혁주의는 종교개혁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요, 오고 왔던 세대에 역사에 걸쳐 교회를 통해 지켜지고 전수되어진 가르침이다.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칼빈이, 앞선 교회의 선생들의 가르침과 다른 새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칼빈이야 말로 앞선 교부(敎父)들의 가르침을 잘 받은 사람이다. 이에 관한 인용을 아래에 붙이고 글을 마친다.

 

종교개혁사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는 칼빈의 독특한 신학함이 그의 신학의 결론에 무엇을 더하여 주었는지를 엿보게 한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위해 섬겼던 순수한 말씀의 증언자들 가운데는 프로망(Froment), 비레(Viret), 파렐(Farel) 이 세 사람이 출중하였다. 1536년 어느날 로잔느(Lausanne)에서는 종교 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개혁자들과 가톨릭 신학자들 간의 이와 같은 회담은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결과에 따라서는 한 도시가 개혁파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고 한 도시의 개혁 세력이 매장될 수도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양측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 존 칼빈(J. Calvin)은 처음 사흘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렐과 비레가 그들을 상대로 토론하도록 물러나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은 토론의 주제가 성만찬이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인 미마르(Mimard)가 등단하여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주의깊게 읽어 나갔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바로 그때, 마른 체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이 한 사람이 일어서서, 비웃음을 머금은 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그 유능한 카톨릭의 변론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빈이었다. 뜻밖의 인물의 출현에 의아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거룩한 교부들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우리들 중에 당신보다 교부를 더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부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교부들의 저작들을 좀더 철저하게 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이 교부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였더라면, 그들의 저작 중에 몇몇 구절들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된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칼빈은 즉석에서 가톨릭측에 의하여 제시된 여러가지 의견들을 조목조목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인채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논거들은 철저히 교부들로 부터만 이끌어져 오고 있었다. 그들은 개혁파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교부들의 글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토록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칼빈은 먼저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의 견해를 인용한 후 주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교부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것이라고 밝혀진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혔다. “제11장 중간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어거스틴의 저작을 인용하였다. “제2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고는 마니교도인 아만투스(Amantus)를 반박한 어거스틴의 책에서 또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상은 그의 글 중간 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교부 어거스틴(A. Augustine)의 시편 98편에 대한 주석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전부 어거스틴의 저작으로 부터 인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교부 어거스틴의 요한복음 설교의 시작 부분인데, 아마 여덟 번째 아니면 아홉 번째 설교일 것입니다….”

이미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으나 이 젊은 칼빈은 고대 교부들의 저작들로 부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가기 위해 증빙자료로 그것들을 인용하고 주석하는 일을 끝내지 않았다. 그가 능숙하게 인용하고 주석해 나가는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 즉, 교부의 저작들을 스스로 신성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낯선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토론되고 있는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들 사이에서도 아직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많은 자료들을 엄청나게 쏟아 놓기 시작 하였다. “<집사 베드로를 위한 신앙론>(De Fide ad Petrum Diaconum)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다르다누스에게>(ad Dardanus)라고 제목 붙여진 서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데…”

칼빈은 이 모든 것을 암기하여 대답하였다. 원고도 없이 책도 없이 그는 자신의 정리된 기억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학문적 천재성이 드러나는 순간만은 아니었다. 발표하는 자신의 신앙에 의하여 확신되어지고, 칼빈 자신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되고 있는 거룩한 성경 진리였다.

천부적인 기억력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는 이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중언들을 들으면서 양측 모두는 숨을 죽였다. 자신의 고발과 비난을 확신있는 목소리로 선포하였던 가톨릭의 연사는, 작은 체구에 창백한 젊은이 칼빈이 그의 두 눈을 자기에게 고정시킨채 다음과 같이 승리에 넘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을 때, 완전히 오그라들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교부들에 대하여 적대적이라고 하는 당신의 주장이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주장이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교부들이 쓴 저작의 껍데기도 못 읽어 본 사람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만일 당신과 당신보다 앞서서 연설했던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교부들의 저작을 통독하였더라면 아마도 현명하게 침묵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수 한 수 밀리다가 마지막에는 신학적으로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는 패배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빛이 역력하였다. 더욱이 그것도 자신들이 자랑하는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서 말이다. 물을 끼얹은 듯한 좌중 한 가운데로, 칼빈이 내리는 토론의 결론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부터 은혜에 의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진리와 사실 안에서 우리들을 결합시켜주는 영적 교제, 우리들을 우리의 구세주와 연합시켜주는 영적인 연합… 이것은 영적인 끈 곧 성령의 줄을 통하여 연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만찬입니다.”

칼빈은 자리에 앉아서 장시간의 연설로 말미암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완전한 침묵이 교회당을 가득 메웠다. 이 연설 가운데 일부분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회중들 조차도, 지금 이 젊은 칼빈에 의하여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서로 경악에 가득찬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고, 감히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들 가운데 유능한 변론자였던 미마르(Mimard)나 블랑셰로즈(Blancherose)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프란시스 교단의 한 탁발승이 일어났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던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로서 개혁을 반대하는 연설을 열렬히 하고 다녔다. 장 땅띠(Jean Tandy)라는 사람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토록 웅변적인 설교로 온 교회당을 뒤흔들어놓았을 이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이미 그의 혀는 목구멍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성서가 말하는 바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는 것은 명백한 진리에 반항하는 완고함이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지금 들은 바 연설에 따라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나는 무지함 때운에 오류속에서 살아왔고 잘못된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려 말하고 행하였던 모든 것에 대해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여기있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순수한 가르침만을 따르기 위하여 성직의 옷을 벗어 버리겠습니다.”

그날 거기 모인 양측의 토론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직감적으로 칼빈의 연설이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많은 가톨릭 수도사들을 회심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로잔느는 참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매춘 소굴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모든 창녀들은 추방당했으며, 종교회담은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매일매일 보오(Vaux)지역의 성직자들은 개혁을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고, 수 개월 내에 수도 사역을 한 80여명의 사제들과 수도사 서약을 아직 하지 않은 120여명의 사제들이 개혁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을 가장 완고하게 고수하던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미미르(Mimard)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단지 칼빈의 철저한 학문적인 준비와 신학적인 천재성만을 입증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거록한 경건 속에서 획득한 자기화된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는 생경의 교리를 말하였으나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속에서 완성된 신앙의 고백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이 그러한 신학적인 선언 위에 함께하신 사실이다. 그는 비록 자신의 강연이 잃어버린 영혼을 건져야 한다는 구령의 동기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경건에 깃든 거룩한 성령의 능력이 진리 위에 함께 하자 가장 극심한 어둠 속에서 살아오던 수도사들을 회심시키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목적 자체를 영혼의 획득에 두고 설교를 해도 초라한 열매밖에 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빛바랜 복음 사역의 현장과 비교할 때,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칼빈의 독특한 ‘경외 속에서의 신학함’이 가져다준 결과이다.

– 김남준, “왜 칼빈의 靈性은 리바이벌 되지 않는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