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가정 예배 — 김헌수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사회가 가정인데, 죄가 들어와서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 김헌수, “두 가지 가정 예배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사회가 안정된 가정에 터를 두기 보다는 직장과 돈(맘몬)에 터를 잡고 일어서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아이는 사회가 맡아서 길러줄테니 어찌해서든 부모를 일터로 불러내려고 한다. 실상 가정에서 바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 보다는 자기가 찾은, 자기가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우선을 두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그런다고 해서 언약의 백성들 조차 거기에 휩쓸려 가서는 안 된다.

교회가 시대의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세대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미 시작된 한국 사회의 변화가 향후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상당한 경우 교회는 사회의 앵무새 노릇을 해왔다. 엘룰(Ellul)의 말을 빌린다:

과거에 교회가 빈곤층을 무시했다면, 지금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이민 노동자들과 가까이 한다. 과거에 독재 정권을 뒷받침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과거에 절대적 진리와 교리를 주장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믿도록 둔다. 과거에 엄격하고 잔인한 성(性) 도덕을 가르쳤다면, 지금은 낙태와 동성연애를 옹호한다. [...]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교회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동시대 사회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수용했을 뿐이다. 빈곤층을 돕는다고 하지만 100년 전, 200년 전 보다 진리의 각성이 더해진 것이 아니다. 배교적 성격은 여전하다. 사회의 주류적 경향에 그대로 부응하는 것에 성육신(聖肉身) 된 진리란 없다. 여전히 전복된 기독교를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만함까지 더했으며 (현대에 와서 비로서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게 됐다는 F. Belo의 순진한 주장 처럼) 앞선 세대의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는 위선도 지니고 있다. — Jacques Ellul, “Subversion of Christianity”

이런 앵무새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사 또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시대의 신앙고백이며, 우리는 우리 시대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자유주의 신학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기독교는 언제 그만 둘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기독교에 대한 질문이니,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에 대해 가르치느 것 중 몇 가지 기초적인 것을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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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1.7절

(1년 완독 계획표가 여기 있습니다.)

1.6절에서 내린 결론—하나님의 계시의 기록, 곧 성경을 떠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대한 바른 깨달음의 최종 권위가 성경에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무리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고, 교회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지, 역으로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역시 성경의 권위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에베소서 2:20)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한 말씀의 터 위에 세움을 얻었다 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의 부분이 되려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해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최종의 권위로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정해 주지 않으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무엇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 칼빈은 그것은 마치 이렇게 묻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합니다: “빛과 어둠을 구별하는 법을 누가 가르쳐 줍니까? 흰 색과 검은 색을, 단 맛과 쓴 맛을 구별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지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은 교회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교회 (한겨례 신문 5월 16일 광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이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가르칩니다.

이를 돌이켜 볼 때, 교회가

  •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힘있게 전하지 못하고 진리를 흐릴 때,
  • 영적인 전투를 하지 못하고 사회적/정치적 이해세력이 되려고 할 때,
  • 그리스도의 지체로 존재하는 본의를 망각하고 신앙을 개인의 인격 수양으로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거룩한 교회가 아닌 타락한 교회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에 대하여 최낙재 목사님이 전한 강설이 5월 16일 한겨례 신문에 전면 광고로 실린다고 합니다. 전문은 성약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