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

지어낸 이야기 하나 : 어떤 청년이 천재 화가 렘브란트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 후 그 청년에게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바둑을 두는 실력이 급상승 한 것이었다. 결국 바둑 대회를 휩쓰는 수준이 되어 많은 상금을 타고 일부를 스승에게 드리곤 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 청년의 기력을 칭송하였고 그것이 다 “그의 스승인 렘브란트 밑에 들아간 후에 일어난 일이라”며 그의 스승을 높였다. 하지만 렘브란트에겐 그것이 찬사로 들리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기사가 아니라 화가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주님은 사회 복지 운동을 하는 사람이 부족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또 늘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모습을 이 땅에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것은 개인 개인을 통해서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라 일컬음을 받는 그 분의 교회가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영광이 된다 하는 문제를 개인의 삶의 문제로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교회의 문제로 일차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또한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겠다는 사람 역시 어떻게 하면 주님이 인도해오신 거룩한 교회의 역사적 전진에 한 분자로서 가담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떠나서는 주님께 영광이 된다든지 기쁨을 드린다든지 따질 여지가 없다.

추상과 실체

하나님 나라의 도리들이 그저 입으로 전해졌을 때는 그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죄 사함이라든지 구원,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라고 하는 것 등의 내용이 다 그렇다.

그런데 그런 추상적인 것들을 실체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여주신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시고 또 그로 인해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의 은혜이리라. (사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진리’란 반드시 실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보이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증케 하심을 본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떤 잘못을 범해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래서 되겠나” 또는 “이렇게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와 일부에게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차원에서의 책망이 있다. 보이는 교회는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죽고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일부로 산다는 진리를 실증하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어린 아이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낀다. 아직도 한 없이 부족한 위치에 있다.

Communio Sanctorum

오늘 예배 시간에 우리 부부와 David라는 형제를 교회의 회원으로 받는 간단한 순서가 있었다. 우리는 앞에 나가 목사님이 질문하는 것에 대답을 하였고, 대담을 마친 후 교회의 회원들이 일어나 우리를 교회 회원으로 받아 서로 권면하며 사랑 가운데 교통할 것을 서약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의지하여 목사님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 나갈 때, 마치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나라로 옮기심을 받았고 그분의 교회로 서 있다. 다만 오늘 교회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해 나갈 때 마치 우리의 모든 것을 직고하는 백보좌 심판의 그 날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 교회가 우리를 형제로 받아 주었을 때 저 훗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때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감격이 있었다.

특별히 우리에게 함께 찬송하기 원하는 시편이 있냐고 물으셨고 우리는 131편을 미리 말씀드렸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부로 삼으셨다는 것이 복음의 깊은 내용이 아닌가. 역시 그것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임을 오늘 참으로 깊게 느낀다. 아버지와 아드님, 그리고 성령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 아래 교회의 거룩한 교통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본다.

교회/교단

도서관 앞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요새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묻기에 교회 이름과 교단을 얘기했더니 “교단 얘기는 하지 말라. 머리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요새 개신교 교단들의 분열된 모습을 보면 분명 우리의 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며 머리가 안 아플리가 없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통합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바인데, 그렇다고 교단의 문제를 우활하게 넘어가거나, ‘하나님 보고 교회 나가지 사람 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는 식으로 자신만 올곧게 서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인격적 완성이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결코 개인의 득도 또는 인격 완성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양 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은 양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르시지만 그 목적은 한 무리 가운데 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무리 가운데 거하지 않고 홀로 어디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결국 잃어버린 양이고 그리스도께서 찾으시사 다시 본 무리 가운데 넣으시려고 하는 양이다 (요 10:16). 그 본 무리 가운데 있어야 자신이 주님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이 현실화 되는 것이지, 그것을 떠나서 자기가 초연하게 주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 외에 무엇이라 하리요.

그렇다면 당면하는 문제는 주의 양 무리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음성이 그분의 양 무리에게 무엇을 명하시며 어디로 인도하고 계시느냐는 것이다. 주님은 목적도 없이 마냥 이끄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프로그램 아래서 그분의 양 무리를 역사의 가도 위에 인도해 나가신다. 특히 현대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그것을 인간의 신앙 고백으로 치부하며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렸다고 믿으며, 그러한 인식 아래 동성 연애를 하는 위치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는 목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식탁에 서있어도 그것이 죄 없다고 하며, 또 초대 교회와 그 선생들, 개혁자들, 청교도 등 역사 속에서 면밀히 이어져온 신앙고백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은헤와 인간의 노력을 합친 인간의 종교를 가르치는 집단이, 이러한 집단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을 내 걸고 있는 시점에, 이런 경황에 교단의 문제는 골치아픈 문제이고 나 개인의 신앙만 잘 점검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저 먼 옛날 삼손의 시대에 삼손 혼자서 이스라엘 전체가 해야 할 일을 떠 맡아 나가던 때에 이스라엘 개개인은 개인의 신앙만 지키기 급급하며 오히려 이스라엘의 나아갈 길을 깨우치려는 삼손을 블레셋에 넘기려했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비상한 시대에는 비상한 각오가 요청되는 것이다. 거짓 교회가 참 교회인 척 나타나는 이 시대에 그저 안일하게 자신이 몸 담은 곳에서 얻는 종교적인 복리만을 누리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나 개인보다 교회가 더 중요함

“언제든지 교회를 생각할 때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구상하신 가장 고귀한 실체라는 것, 그리고 나 하나의 존재보다도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나 하나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가장 귀한 사실은 아닙니다. 내가 그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그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귀한 것인 줄 알고 교회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 적당히 만들면 교회인 줄 아는 그런 그릇된 관념이라든지 관습, 습성이 있다면 그것들을 완전히 불식해 버려야 합니다. 깨끗이 씻어 버리고 교회를 신성하게 아주 두렵게 생각하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김홍전, 中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골로새서 1: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