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Forgive

(This is a recollection of thoughts after reading “How Christ Walked on Earth” by Hong-Chun Kim.)

Here’s a well-known passage of a dialogue that went between Jesus and his disciples regarding forgiveness:

Then Peter came up and said to him, “Lord, how often wi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Jesus said to him, “I do not say to you seven times, but seventy times seven.” (Matthew 18:21,22; ESV)

Jesus’ words gives us the impression that we have no choice but to forgive.

Now, as it is for other aspects of Kingdom of God, forgiveness primarily takes place in the heart of one person—its outward appearance is not the ultimate measure of its genuineness. For instance, suppose your brother has a gambling problem and keep borrows your money to spend it in gambling. If you say “I forgive him” but inwardly hate him, you are not forgiving him. Or, even though you don’t hate him, if you don’t take actions to help him get out of the addiction, then you are not forgiving him out of love but jut giving up on him.

There is still another issue with forgiveness; that is, the ability to forgive; forgiveness only makes sense if you have the option to do otherwise, say, avenge, punish, etc. What if you don’t have those other options? Suppose someone beyond your power stole your property and you cannot do anything about it. So you decide to let go and forget about it. Can you say that you actively forgave the thief?

In fact, this issue does not vanish even if you do have other options, in the case where the thief is not that powerful and you can make him pay—because if you decide to make him pay, you should be able to evaluate his debt fairly and exactly. If you avenge on him more than he deserves, or for that matter less than he deserves, then you have executed injustice and have committed sin. “You shall have just balances, just weights, a just ephah, and a just hin” (Leviticus 19:36; ESV).

It is clear there is a fundamental lack of ability on us to perform just judgments. As the bible declares, “Moreover, I saw under the sun that in the place of justice, even there was wickedness, and in the place of righteousness, even there was wickedness.” (Ecclesiastes 3:16).

It is only the Holy One who can perform just judgment. No wonder we are required to “never avenge yourselves, but leave it to the wrath of God, for it is written, ‘Vengeance is mine, I will repay, says the Lord.’ ” (Romans 12:19)

Indeed, when Stephen was being stoned, he prayed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Of course, the men who were stoning Stephen were sinning not only against Stephen but ultimately to God. Stephen here is humbly asking to pardon the evil they are doing to Stephen; not every single sin they committed to God; Stephen would have known well that he has no right to tell God what to do for the sins committed to God.

Going back to Peter’s question—”how often wi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it seems that Peter is assuming that by forgiving his brother he is carrying out a virtue or merit. However, we know that we have no other choice but to forgive; by doing so we are not generating any virtue; it’s just a natural response to the fact that we have total inability to create justice and that God is the only dependable judge. Yes, we have an upright and just judge and He will not over pass any injustice that takes place in this world. The day comes when “each of us will give an account of himself to God.” (Romans 14:12)

After Walking on the Water

At home bible study we are tracing and studying the life of Jesus, with the aid of the book “How Christ Walked on Earth” by Hong-Chun Kim (in Korean).

Recently we studied the miracle of Jesus walking on water (John 6:16–21). I was well aware of the story, but this time a detail that I didn’t notice before came to my attention (pointed out by Rev. Kim, the author of the above mentioned book): Continue reading

그리스도관과 하나님 나라의 증거

김홍전 목사님의 <내 증인이 되리라> 1권 제 4강 “제자들의 메시아관”을 읽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어떻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여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설명하신뒤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여쭙게 된다. 비록 역사 가운데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이 위대한 사건을 그들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완성된 모습으로 펼쳐지리라 오해하였던 것이다.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은 완성된 모습이 아닌 시기를 거쳐야 함을 그들은 깨달아야 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기가 쉬운데 이러한 것들이 제 4강에 몇 가지 나열되었다.

제2위 하나님 — 요한복음 1장에서는 그분을 하나님의 로고스(λογοσ)라 표현하였는데 — 로고스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예수님께서 겉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내면은 완벽한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쉬운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을 다 가지지고 동시에 또한 사람으로서의 본질을 다 취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도 우리의 한계를 다 경험하셨지만 (배고픔과 피로 등등) 또한 그 영혼의 활동에 있어서의 제한도 경험하셨다 — 그래서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와 같은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로고스의 인격이고 그렇게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은 거룩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로고스의 인격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성경은 또한 표현하였다.

이러한 것을 바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삼위 하나님께서 세 인격이시지만 곧 한 분이시라는 거룩한 속성과 다르게 어떤 한 위가 다른 위 보다 낮은 서열에 있는 것 같은 이론을 펼치기가 쉽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받으사 지금 이 땅위에서 통치대권을 발휘하신다는 사실 역시 이상과 같은 사실 위에서 이해가 가는 것이다. 로고스로서 제 2위 하나님께서는 왕권을 누구에게 받을 것이 없이 하나님으로서 늘 갖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로고스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뒤 부활하셨는데,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부여된 영광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나라의 왕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왕권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왕권은 재림 후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데, 그 통치의 사실이 더 분명히 드러나기는 그분의 피로 사신바 된 백성들 곧 교회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것은 언어적인 증거도 있겠지만 이렇게 존재 자체가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의 자식들이 밖에 나가 행동할 때 그들의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집안 아이들과 구별된 특성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어떤 다스림 아래 있음을 보이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분명한 사실을 특별히 이 세상에 증거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성도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통치가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요,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전체로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가는 자태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김홍전 박사님의 책

갓피플 CEO의 블로그에 김홍전 박사님의 책을 읽다가 느낀 소감이 짤막하게 있다. 그 게시물을 읽으며 크게 동감했다 — 그것은 내가 김홍전 박사님의 책을 읽다가 느낀 그것이었다; 한 겨울 꽁꽁 언 강물을 깨고 한 바가지 퍼다 머리에 부은 느낌 — 빛 앞에 나의 암매와 어리석음과 부패와 저회적 상태가 훤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비류없는 높으심과 크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호방한 사상의 압도.

그 후, 하나님 나라의 도리가 아닌 사람의 도덕 윤리관이 만들어내는 신학이 얼마나 어린 아이의 말장난 같은 것인지 목도하게 되었다.

김홍전 박사님을 예언자로 쓰임 받은 하나님의 그릇으로 느끼는 것은 나 만이 아닐 것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15:2)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부터 7장 까지 기록되어 있는 바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결미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산상보훈 가운데 주님께서는 여러번 하나님을 지칭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또는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여기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나님의 그 독특한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과 관련해서 몇 가지만 정리하고 싶다.

첫째,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의 뜻을 항상, 부족함이 없이, 안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혹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혹 행할 능력이 있어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고’(요 3:13)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완전하게 아시고 충만히 이루신 분은 오직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일컬음을 받으신 예수님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길 뿐이다.

둘째. 예수님이 주(主)이신 것과 그 분과 관련된 것들을 틀림없이 믿고 또 그것들을 가르치며, 귀신을 내어 쫓은 권세를 받고 또한 크고 훌륭한 일들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원 받은 증거는 되지 않는다. 물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약 1: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권능을 받고, 그 분의 나라를 위한 크고 훌륭한 일들을 행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이 구원의 열매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구원의 가장 큰 열매는 다시 태어남이며, 이로 인해 어둠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웠다는 큰 사실의 실증이다.

셋째. 사람은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해서는 아니 된다. 자신이 성경의 여러가지 사실들을 믿고 있다 할지라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힘 입어 기적을 행했을지라도, 혹 그 분 나라를 위한 권능을 행하였다 하다러도, 그런 것이 구원의 보증이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은 것을 가지고 주님께 인정 받으려고 한다면 그와 함께 나의 모든 죄악들도 공정하게 평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 64:6) 그것을 모르고 천국에 들여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의 능력으로 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니 또한 불법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의 반석이시다.

- 김홍전 박사님의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