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한 개혁신앙적 입장

그런가하면 성경 시대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였지만 오늘날의 방언은 계시적 도구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 날에도 방언 현상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둘째 입장을 가지게 되면 성경에 나타난 방언과 오늘날 있는 방언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을 취할 때, 오늘날의 방언 현상과 성경적 방언을 같은 것으로 보고 하는 논의를 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 “방언 문제에 대한 성경적 개혁 신학적 논의를 감사드리면서” 이승구 교수

Todd Bently (토드 벤틀리)

베니 힌(Benny Hinn)에 대해서는 그의 책을 놓고 서평을 쓴 것이 있고, 샨 볼츠(Shawn Bolz)와 관련해서 신비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 그 때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 중에 Todd Bently(토드 벤틀리 혹은 타드 벤틀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의 사기성에 대해 Nightline에서 방송을 했네요. 동영상을 아래에 옮겨 왔습니다.

기름 부음! 영성! 치유! 신유! 방언! — 이런 말들을 외치면 굉장히 신령해 보이지만, 신령한 능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굵직한 선을 그은 신앙의 선조들을 보면 전혀 그런 것을 외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확인하는 바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벤틀리는 마치 기적이 구원의 신앙의 증거인 것 처럼 얘기합니다:

“기적과 치유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며, 표적이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신학 뿐입니다” — 벤틀리 (Travis Reed, “Religion Today“, Associated Press. 2008년 7월 30일자)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것과 병 고치는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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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the Apostle and Unknowns from Cyprus and Cyrene

(Thoughts after reading Ch.14 of “Do Not Call Anything Impure what God has Made Clean” by H. C. Kim)

In Acts Chapter 10–11, we see two groups of Christians approaching the gentiles with the gospel of the Kingdom. First group was led by the great apostle Peter, and the other were some unknown Christians whom we only know were from Cyprus and Cyrene.

The unraveling of history recorded here is quite remarkable; to see this we must understand the obstacles faced by the Church at that time. Apparently there were some unsettled issue among Christians (mostly consisted of Jews at that time) on how to treat the circumcision—the mark of the holy covenant of God. They didn’t yet have the full understanding that now the King, our Lord Jesus Christ, has been glorified, he has declared a new economy of the Kingdom with a better covenant made with His blood, which the previous covenant was the shadow of, and that He established baptism as the sacrament of the new covenant, its role replacing that of the circumcision. A deep exposition on this whole matter is given to us in the epistles of Paul; but in Acts 10 and 11 that is yet to come and many Christians thought that the first step of entering the covenant community, namely the Church, is to become one of the circumcised and bare the mark of, which we now know as, the old co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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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으로 무엇을 깨달으려 하는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린도전서 4:6)

설령 방언을 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무엇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인가는 결국 성경을 통해 분별 됩니다.

그렇다면, 방언을 하지 못해도 성신께서 성경을 통해 같은 내용을 깨닫게 하신다면 목적이 달성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던 안 하던 차이는 내 감각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는 방도는 말씀을 통해서이고 방언이 성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 만 번 꿈을 꾸고 방언을 해서 무엇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위해 필요 충분한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 제시하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치 방언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주장들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방언, 꿈 등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리를 깨닫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방언, 신유, 은사, 천사 등을 내세우는 거짓

그리스도 예수의 공효와 그를 향한 믿음이,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믿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장 中)

그러나 기독교 초창기에는 할례를 받았다던지 토요일을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이 그러지 않는 기독교인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침입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류 없이 높으심과 탁월함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로새서 2:16–18.)

할례, 안식일 만이 아닙니다;

금식도, 방언도, 신유도, 새벽 기도도,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위에 무엇을 덧 붙여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성도 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외에 그 무엇이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는 그 어떤 식의 생각도,

아무리 ‘기독교’라는 껍대기를 쓰고 나와도,

그것은 인간 종교요 인간의 헛된 자랑이요, 십자가를 욕보이는 것임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2:8–10)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Fide (오직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