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죄를 계속 지어도 구원 받았나요?

회개를 주제로 하여 개혁주의의 핵심—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30여 분 짜리 녹음이 있습니다. 거기서 다루는 내용 중 몇 가지만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회개와 성화는 다른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회개는 “change of mind”이고, 성화는 “change of life”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죄의 심히 죄된 것을 아는 것이고 슬퍼하는 것이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 회개와 성화가 비슷한 부분도 있다; 둘 다 믿음의 열매이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둘 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참된 회개와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발생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다.

방언, 신유, 은사, 천사 등을 내세우는 거짓

그리스도 예수의 공효와 그를 향한 믿음이,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믿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장 中)

그러나 기독교 초창기에는 할례를 받았다던지 토요일을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이 그러지 않는 기독교인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침입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류 없이 높으심과 탁월함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로새서 2:16–18.)

할례, 안식일 만이 아닙니다;

금식도, 방언도, 신유도, 새벽 기도도,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위에 무엇을 덧 붙여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성도 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외에 그 무엇이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는 그 어떤 식의 생각도,

아무리 ‘기독교’라는 껍대기를 쓰고 나와도,

그것은 인간 종교요 인간의 헛된 자랑이요, 십자가를 욕보이는 것임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2:8–10)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Fide (오직 믿음)!

그리스도의 탁월함

우리의 고백도, 회개도, 의지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이웃집 영감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십니다.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 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두지 않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요한복음 10장 3절을 보면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 하나 하나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아신 예수께서는 개인을 군중의 부품 같이 취급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필요를 다 아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나 하나와 예수님을 비교하자면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온 인류와 예수님을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과도 예수님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분 앞에서는 나는 찌끼 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개인의 가치를 전체 속에 파묻어서는 안 되지만, 그 가치가 가장 높은 가치는 아닙니다. 나 한 사람 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고 내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수님의 몸이 지체인 나 보다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할 때에도 아드님 되신 하나님의 인격을 미물인 내가 나타내 보이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성인군자가 되어 나를 보고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증거해 나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 거룩한 본체 안에 있는 내가 거룩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1: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