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2)

자식을 기르되 자식 개인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서 개인 개인의 인격이 구김살 없이 하나님의 자식답게 장성하도록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내 의사로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어려서 자기 은사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누군가 늘 돌아보아야 하고, 누군가 대행해 줘야 할 때의 일입니다. 큰 다음에는 부모의 의사로 자녀를 주장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졌을지라도 성신님께서 그 진리를 쓰셔서 자녀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기만 바라는 것뿐이지, 강요한다고 해서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녀가 성인이 되고 자기 주장을 가진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진리를 전하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회인에게 전하는 것같이 전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의지할 사람은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사회 기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사실을 삶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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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진리를 다해서 가르쳐도 완고가 안 깨질 대는, “그러면 네가 교훈을 배워야 하겠다. 네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채찍을 맞고 배울 수밖에 없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채찍으로 그 아이를 징계해서 고쳐집니까? 고쳐질 나이가 있습니다. 고쳐질 나이가 지난 다음에는, 즉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도 생기고 자기 인격에 대한 자각도 생긴 다음에는 그 인격을 손상시키는 방법으로는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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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始終)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징책을 당해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것도 사람의 욕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의 자식이라고 하시며 징계하시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의 손에 맡기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왜 내 자식은 징계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벌벌 떨면서 야단 내고 돌아다니겠는가?’ 나중에는 그런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돌아본다고 해서 서두르는 것이 아니고, 소리지르는 게 아니고,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또 억지로 그 속에다가 인 박히게 하듯 사상을 집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도덕적으로 설득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이러이러한 것이 그분의 뜻이다’ 하고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순순히 말하는 것으로 감복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이 진리를 전할 때 이 진리를 쓰사 그 속에서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그 간절한 기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신은 꼭 즉시로만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가 그 말을 듣고 잊어버렸어도 나중에 하나님의 성신께서 그 말을 가지고 다시 기억 나게 하시고, 다시 그 마음 가운데 찔러서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진리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꼭 문제를 당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에 이르러 장황하게 붙들고 앉아서 자꾸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때를 따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도리를 차곡차곡 순서 있게 가르쳐 주면 그 아이는 그런 데에서 차츰차츰 사상을 얻게 됩니다. 그냥 저절로 얻는 게 아닙니다. 책을 보고 얻듯이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거룩한 나라의 진리를 성신께서 그 속에서 역사해 가지고서 비로소 얻는 것입니다. 성신이 역사하심으로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제한과 이런 한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 김홍전, 中

부모와 자녀 (1)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자녀 관계를 상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상속자라든지 상속을 시키겠다는 기업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가장 어른이 되시는 까닭에 가장(家長)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신 그 가정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그랬습니다. 그런고로 교회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인가 할 때,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있는 한 집안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교회가 일종의 집안이라면, 그 실례(實例)는 가정에 있습니다…이 사실은 우리의 가정 생활에 중요한 도덕적인 의무를 깨우쳐 줍니다. 먼저,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자녀를 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곧 자녀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대하시는지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자기의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깨우쳐 줍니다. 부모에게 어떻게 대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어떤 심정으로 대하는 것인지를 배우고 생각하면서 부모를 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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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중요한 것은 부자간의 독특한 사랑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라는 말로 어버이를 대표할 때 어린 것들이 저희 어버이에 대해서 덮어놓고 안심하고 의지하고 살아나가는 이 형태, 그리고 그 어버이 되는 사람은 어린 자식들을 또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 이런 형태,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심어 주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 당신에게 원래부터 있는 거룩한 품성으로서,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그와 같이 돌아보시는 것을 우리에게 또한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지라도 우리들 자신의 가정에서 배울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이 하시려는 방식대로 자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대해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녀도 마땅히 어떠한 의무와 생각으로 부모에게 대해야 하느냐 할 때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도대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것이 가장 정당한 부자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부자의 관계를 잘못된 철학으로 세워 놓으면 마치 자식이 부모를 위해 순절(殉節)을 하고 또 심지어 부모를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만들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 유교 사상 가운데 부자의 관계에서 효(孝)라는 것을, 말로는 효를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희생을 하되 나중에는 심지어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부모를 위해서 희생을 하면 그것을 출천대효(出天大孝)라고 했던 일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로써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도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과의 관계자라는 점을 떠나서 끝까지 자기와의 관계, 즉 어버이와 자식간의 관계가 최종의, 최고의 관계인 것같이 생각하는 오류 가운데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어버이가 자식을 대할 때 분명히 가져야 할 생각은, ‘이게 내 자식이지만, 나보다 더 가까운 관계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식이고, 내가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주장해서 위에서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러고저로고 하셔야 한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 인격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자식답게 정당하게 자라나도록 내가 보호해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어버이는 하나님의 자녀를 후견(後見)하는 후견인의 자격을 가지는 것입니다. 장성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맡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한 사람이지, 자기의 소유가 아닙니다. 자기의 재산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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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부모의 관계, 하나님과 자식의 관계하(下)에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나와 자식의 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자식 때문에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되는 셈입니다.
[...]
그런 까닭에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다 잘해야 합니다. 가정을 잘 세워 나가고 자녀들을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양육해 나가는 일에도 충성을 다하되, 주께서 나를 쓰셔서 하시려는 일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행해 가야 합니다. 전자도 중요하지만, 후자는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두 가지의 아주 생래적인 의무를 가정인은 짊어지고 있습니다.

– 김홍전, 中